스탠리 텀블러에는 어떤 과학기술이 있길래 이렇게 인기 있을까? 지난 2022년 숏폼(짧은 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TikTok)에서 전소된 차 안에서도 얼음물을 지킨 텀블러 영상이 바이럴을 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중금속벽 보온병의 최초인 스탠리가 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야기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일상생활 속 주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자신의 진로희망에 맞춰 과학탐구/과학실험 주제를 만들어 심화학습, 생기부 세특, 수행평가, 동아리, 진로활동, IB 물리·화학·생물 IA나 EE 등에 활용해 보세요 :)
목차
1. 열의 기본 개념
음식의 맛은 온도와 비례합니다. 추운 날 따뜻하게 마시며 몸을 녹이는 오뎅국물, 더운 날 시원하게 베어 먹어야 기운이 생기는 아이스크림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음식의 온도를 맛있게 유지하면서 공간의 제약 없이 먹기 위해 발명된 것이 보온(보냉)¹ 용기입니다.
¹보온병은 이름 때문에 따듯한 음식 전용일 거 같지만, 차가운 내용물도 차갑게 유지된다 - 즉, 보냉이기도 함.
보온 도시락통부터 보온 텀블러(물병)까지 다양한 식품 보관용기에 사용되는 단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열과 온도
일상에서 열과 온도는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지만, 사실 둘은 완전 다른 물리량입니다. 열(heat)은 온도차가 있는 두 계가 상호작용하여 고온계에서 저온계로 에너지가 전이되는 과정을 의미하며, 온도(temperature)는 두 계의 온도가 같아지는 열적 평형(thermal equilibrium)을 특징짓는 척도이자 계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에 비례하는 값입니다. 열평형을 이룬 서로 다른 두 계 사이에는 에너지 전달이 발생하지 않는데, 이를 정리한 것이 열역학 제0법칙²입니다.
²서로 다른 두 계 A와 B가 각각 다른 계 C와 열평형을 이뤘다면, A와 B도 서로 열평형이다.
기체 분자 운동론에서 기체 분자의 평균 운동에너지는 계의 절대온도(absolute temperature)³에 비례합니다. 그리고 운동에너지는 속력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분자가 많은 계일수록 온도가 높습니다.
³절대온도는 온도의 SI 단위인 [켈빈(Kelvin, K)]을 사용하며, 섭씨온도(°C)에 273.15를 더하면 절대 온도를 구할 수 있음.
열평형에서 특정 계 안의 기체 분자들은 모두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지 않으며 맥스웰-볼츠만 분포(Maxwell-Boltzmann distribution)를 따라 가장 많은 기체 분자들이 갖는 속력인 최빈속도⁴를 중심으로 이보다 빠른 분자와 느린 분자가 존재합니다. 계의 절대온도가 높을수록 그래프는 오른쪽으로 치우치는데, 이는 기체 분자들의 평균 운동에너지가 더 높고 그래서 더 빨리 움직이는 분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⁴최빈속도는 분포 그래프를 미분하여 극점을 찾아서 유도하며, 실제 우리가 과학 수식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은 제곱평균제곱근 속력인 v_rms임.
즉, 온도가 높을수록 해당 계 안에는 빨리 움직이는 기체 분자가 많으며, 빨리 움직이는 분자가 많을수록 계의 총 운동에너지가 높다는 겁니다.
열전달(Heat transfer) 방식
열은 에너지가 아니라, 에너지가 전달되는 형태이자 과정이기 때문에 "열이 전달된다"는 표현은 엄격하게 틀린 표현⁵입니다. 그럼에도 과학자나 공학자들은 '열전달'이란 표현을 '열'의 정의(에너지가 고온계에서 저온계로 전달되는 것)로 동치하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⁵열전달(heat transfer)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나 열 자체가 에너지의 전달을 내포하기 때문에, "열전달"은 사실 "[에너지전달]전달"로 전달이란 표현이 중복됩니다.
물체는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유입되면 온도가 오르고, 방출되면 내려갑니다. 그래서 어떠한 물체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에너지 교환을 차단하거나 들어오는 에너지만큼 방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물체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열역학 제2법칙⁶에 따르면 고립계의 엔트로피(entropy)는 증가합니다. 이러한 법칙 하에서 고립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위해서는 열이 고온계에서 저온계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가 방 안에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두면 커피에서 열은 빠져나오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계속 따듯한 온도를 유지할 수 없고 식게 됩니다.
⁶정확히는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열전달 방식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 전도(conduction): 접촉하고 있는 고체 속 분자의 진동으로 인한 운동에너지와 자유전자의 이동으로 인한 에너지 이동. 열의 전도체는 열전달이 잘되는 물질이며, 열의 부도체는 열전달이 잘 안 되는 물질.
- 대류(convection): 고체의 표면과 이와 인접한 유체(기체나 액체), 서로 인접한 기체와 유체 간의 에너지 전달로, 따듯하고 밀도가 낮은 유체가 상승하고 차갑고 밀도가 높은 유체가 가라앉는 순환과정이 반복하면서 - 즉, 유체가 유동하면서 발생
- 복사(radiation): 전자기파(빛)의 형태로 매질을 통하지 않고 직접 고온의 물체에서 저온의 물체로 에너지가 전파 (방사도 radiation이라, 구분하기 위해 열복사(thermal radiation)이라 부르기도 함)
예시로 컵에 담긴 뜨거운 물이 식는 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컵에 담긴 물과 같은 액체는 주로 증발과 대류에 의해 열손실이 발생하며, 복사와 전도는 상대적으로 영향이 미약합니다. 대류를 통해 물은 유동하면서 상대적으로 뜨거운 물을 표면으로 전달해줍니다. 표면에서 물은 증발(evaporation)을 통해 에너지를 손실하는데, 물은 열원이 없어 끓지 못 하더라도 모든 온도에서 - 즉, 끓는점(boiling point)⁷이 아니더라도 액체 상태에서 기체 상태로의 상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 분자 중 상대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래서 운동에너지가 높은 분자들이 액체 상태를 유지해주는 분자간 인력(intermolecular forces)을 끓고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기화됩니다. 에너지가 높은 분자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남은 분자들의 평균 에너지가 낮아지고 이와 비례하는 온도도 떨어집니다. 물론 뚜껑이 있는 용기라면 수증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응축하기 때문에 증발로 인한 열손실이 적은데, 뚜껑을 열어두면 물이 빠르게 식어버린다는 걸 경험했을 겁니다.
⁷물의 끓는점은 1기압에서 섬씨 100도이며, 이는 액체의 증기압이 외부의 압력과 같아지는 온도
2. 보온병의 구조와 단열 원리
보온병은 내용물을 일정한 온도로 장시간 유지해 주며 시간이 지나도 처음에 가까운 맛을 보존해 줍니다.
우리가 손으로 잡는 겉부분은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강 재질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유리나 스테인리스강 재질로 만든 이중구조가 들어있습니다. 제조사에 따라 내장된 이중구조가 유리병인 경우가 있고, 또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유리 대신 스테인리스강을 사용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 이중구조는 큰 외병 안에 작은 내병을 넣고 입구 가장자리의 이음새를 용접한 다음, 병 밑면의 구멍을 통해 비어있는 사이 공간의 공기를 흡입하여 초진공 상태를 만들고 마감재로 봉쇄합니다. 내용물과 접촉하는 내병 안쪽은 은 같은 금속으로 박막 미러코팅 되어 있습니다. 보온병의 겉부분과 이중구조는 맞닿지 않으며, 밑면의 볼록한 지지대 그리고 제조사에 따라 측면에도 지지대를 설치합니다. 뚜껑은 단단한 밀봉을 위해 돌려서 여닫는 스크루캡이 많으며 고무마개와 고무패킹까지 있습니다.
잘 만든 보온병은 열전달의 경로를 차단하여 내용물의 온도를 유지합니다.
전도와 대류에 의한 방열 차단
보온병의 이중구조 사이가 진공에 가까운 초진공 상태로 되어 있는데, 진공에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를 전달할 매체가 없어 좋은 열의 부도체입니다. 어떠한 물질의 열전달 능력을 나타내는 값을 열 전도율(thermal conductivity)이라 말하는데, 진공의 열전도율은 복사 외의 경로가 없어 0에 수렴합니다. 이로 인해 매체가 필요한 전도와 대류는 차단되는데, 진공으로 바깥과 고립된 보온병 내부는 열평형 상태를 이루어 열의 흐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완벽한 진공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실제로는 미세하나마 공기 분자가 남아있습니다. 그랬을 때 전도는 외병과 내병이 만나는 이음새 부분에서 취약한데, 여기서 상대적으로 고온인 내병의 분자가 진동을 통해 운동에너지를 저온인 외병에 전달합니다. 이를 최소화하려면 이음새 부분을 최대한 얇게 만들어 인접한 분자를 줄어야 합니다. 대류의 경우, 내용물이 유동하며 벽면이나 표면에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는데, 일단 내용물과 벽면의 온도차는 전도를 최소화하여 줄입니다. 표면에서의 증발은 뚜껑으로 잘 밀봉하여 수증기의 유출을 줄여서 공기 속 수증기가 포화상태에 이르러 다시 응축하도록 해야 하며, 마개나 고무패킹 같은 부도체를 사용하여 병 안의 공기가 식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복사에 의한 방열 차단
복사는 매개체가 필요치 않아 이중구조 사이의 진공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내병 표면은 은, 동, 알루미늄 등의 매끈한 금속 소재가 얇게 도금되어 전자기파를 반사하여 복사를 통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금속에는 자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좋은 열의 전도체(conductor of heat)이지만, 복사의 차원에서 전자기파를 반사시킬 수 있어 쓰임에 따라 좋은 단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뜨거운 내용물은 주로 적외선 파장의 복사선을 방출하는데, 이 적외선파가 금속 박막에 도달하면 박막 표면의 자유전자가 파장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같은 진동수로 진동하면서 같은 진동수의 적외선을 방출합니다. 즉, 반사로 인하여 에너지가 내용물에서 박막으로, 그리고 다시 박막에서 내용물로 되돌아가는데 대부분 금속의 반사율은 90-95%에 육박하기 때문에 복사로 인한 알짜 변화가 0에 가깝습니다. (금속은 가시광선 또한 반사하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금속이 반짝반짝 광택이 납니다.)
3. 최초의 보온병, 듀어 플라스크(Dewar flask)
보온병은 19세기말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듀어(James Dewar)에 의해 발명됐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보온병은 Dewar flask란 별명이 있으며, 이외에도 vacuum flask, thermos flask, Dewar bottle 등의 다양한 호칭이 있습니다.
▲ 진공을 활용한 보온 용기의 시작
듀어는 1870년대 초⁸ 금속 팔라듐(Pd) 원소가 상온에서 다량의 수소를 흡수한다는 성질⁹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팔라듐이 화학반응 없이 수소를 흡수한다는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열량계(calorimeter)를 이용해 수소-팔라듐의 비열(specific heat)을 측정하고자 했습니다.
⁸당시 에든버러 대학의 Lecturer와 Highland and Agricultural Society of Scotland의 Assistant chemist 겸임
⁹팔라듐은 이러한 성질 덕분에 수소저장합금에 이용되며, 오늘날 수소에너지 저장방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열량계를 이용한 비열 측정 비열은 어떠한 물질 1g의 온도를 1°C 높이기 위해 필요한 열량이며, 단위는 J/(g°C) 또는 kcal/(kg°C)이다. 비열은 물질마다 다르기 때문에 물질을 구분짓는 데에 사용된다. ![]() 간단히 간이열량계를 통해 열량계로 비열을 측정하는 법을 살펴보면, ① 용기에 미리 비열 c₁을 알고 있는 액체 m₁를 넣고 온도 t₁을 측정 ② 비열을 측정하고자 하는 고체시료 m₂를 특정 온도 t₂까지 데우고 용기에 넣음 ③ 젓개 막대로 열량계 내를 섞어 열평형이 도달되면 최종 온도 t₃ 측정 ![]() |
그러나 열량계를 이용한 비열 실험 특성상, 시료 간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 온도변화에는 열량계로 인한 열손실이 없다는 가정이 중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듀어는 더 좋은 단열용기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작은 황동 챔버를 또 다른 황동 챔버 안에 가두고, 그 사이를 초진공 상태로 만든 새로운 실험기구를 개발했습니다. 이는 기존 이중벽 사이를 제습제로 채우던 용기보다 단열이 월등히 뛰어났고, 이 새로운 기구를 통해 듀어는 팔라듐 속 수소의 비열이 기체 수소의 비열과 동일한 3.4kcal/(kg°C)임을 확인하며 팔라듐과 수소는 화학반응 없는 흡수를 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 복사를 최소화하기 위한 도금
이후 듀어는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직을 거쳐 영국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의 교수가 되었고, 전임자인 M. 패러데이의 연구를 이어받아 저온물리학(cryogenics)이란 분야에서 액화가스를 연구하며 그의 실험기구를 발전해 나갔습니다. 기체를 액화하는 과정은 비싸고 또 시간이 많이 소모됐기 때문에, 당시 과학자들은 모두 한번 액화한 기체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단열 용기를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1893년에 액체질소를 연구하던 듀어는 기존의 황동을 유리로 대체하고 유리병의 내벽과 외벽에 은 또는 수은 박막을 코팅하여 복사로 인한 열손실을 약 1/13 수준으로 줄이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러한 발명품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 식품 보온이란 새로운 용도의 발견
듀어는 자신의 단열 보관용기를 제작할 수 있는 유능한 유리공을 찾는데 상당히 애 먹었고 어쩔 수 없이 바다 건너 독일에 용기 제작을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를 위해 일하던 R. 버거(Reinhold Burger)를 포함한 독일 유리공들은 우연히 은도금된 진공 플라스크에 데워진 우유를 보관하면 밤새 아기한테 우유를 따듯하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듀어의 플라스크의 상업적 가치를 알아챘습니다. 1903년 버거는 듀어의 디자인을 발전시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외병과 겉 부분 사이에 철사와 양모 펠트를 삽입하였고, Thermos Flasche란 이름으로 보온병에 대해 특허권과 상표권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06년 그는 베를린에서 Thermos-Gesellschaft mBH란 이름의 회사를 차려 시장 판매를 본격화했습니다.
▲ 딜레마, 비영리 활동으로서의 과학 연구
Thermos사의 보온병이 시장에서 잘 팔리자 듀어는 뒤늦게 소송을 걸어 권리를 되찾고자 했으나 패소했습니다. 사실 동시대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발명품을 특허 등록하고 나아가 상업화하는 것이 유행이었기에 듀어가 애초에 특허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의아한 선택입니다. 오늘날 과학사학자들이 추측컨대, 듀어는 왕립연구소 소속으로 영국의 엘리트층과 교류가 많았으며 이러한 지위의 학자가 자신의 연구적 결실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취득하는 것이 관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 해석합니다. 현재 Thermos와 THERMOS는 등록 상표로 남아 있지만, 소문자 thermos는 인기에 힘입어 법적으로 보통명사화¹⁰ 되었습니다.
¹⁰우리나라 삼립식품의 찐빵 제품인 '호빵' 또한 유명해져 보통명사화된 사례
듀어의 보온병은 식품 보관용기라는 상업적인 용도 외에도 연구, 그리고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실험실에서는 액체 질소 등을 보관하기 위한 용기를 극저온저장탱크(cryogenic storage dewar)라 칭하고 있으며, 의약품 운수송에 있어 온도에 민감한 백신 등을 보관하기 위해 듀어의 발명품을 사용합니다. 천연가스 산업에서는 선박에 더 많은 천연가스를 운반하기 위해, 천연가스를 -162°C에 액화시켜 부피를 약 1/600로 줄인 액화천연가스 LNG(liquefied natural gas)로 만들어 진공저장탱크에 보관합니다.
4. 스탠리 텀블러만의 특별함
다시 보온병 텀블러로 돌아가, 미국의 Z세대를 시작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스탠리(Stanley) 텀블러는 특유의 여리여리한 파스텔 색감에 더불어 틱톡에서의 영상 바이럴을 통해 그 성능까지 입증되어 2019년 매출 7300만 달러에서 2023년 매출 7.5억 달러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danimarielettering Thirsty after you catch on fire? @Stanley 1913 is like no problem i gotchu #fyp #carfire #accident #stanleycup ♬ original sound - Danielle
스탠리 텀블러는 특히 미국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트렌디함의 징표로 $45의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퀜처(Quencher) 40oz 모델은 한동안 10대 소녀들이 가장 받고 싶은 생일 또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꼽혔습니다.
▲ 최초의 금속 이중벽 보온병 텀블러
유행하기 전까지 스탠리는 2차 세계대전 미공군 파일럿들이 사용했고 미국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실용적이고 튼튼한 이미지였습니다. 이러한 이미지 뒤에는 스탠리의 창업주인 W. 스탠리¹¹가 기존 보온병의 유리를 금속 재질로 교체하고, "Build for life(평생을 위해 만들다)"라는 홍보용 슬로건을 내세운 배경이 있습니다.
¹¹그는 당대 유능한 전기기술자로 최초의 실용 변압기를 발명했으며, 웨스팅하우스 등과 협력하여 교류(AC) 장거리 운송 시스템을 개발함. 소문으로 그는 하루종일 전기작업을 하면서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내구성 좋은 보온병을 제작함.
유리로 만든 보온병은 특히 외병과 내병의 열팽창(thermal expansion) 차이로 인한 파열의 위험이 있습니다. 외병과 내병이 동일한 소재여도 각각이 노출된 온도가 다르면 팽창하는 정도의 차이가 발생하여 작은 균열이 생깁니다. 또한 유리는 취성(brittle) 재료이기 때문에 작은 스크래치나 금이 시발점이 되어 뜨겁거나 차가운 액체를 담는 순간 급격한 온도 변화로 깨질 수 있습니다.¹² 유리 가공 기술이 부족했던 듀어와 스탠리의 시대에서 스탠리는 파손에 취약한 유리를 스테인리스강(stainless steel)으로 대체했습니다.
¹²지금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축이음(expansion joints) - 온도 변화에 의한 팽창과 수축으로 발생된 변형을 흡수하여 파손을 방지하는 부품을 사용하고 또 완충제를 충분히 넣고 있습니다.
스탠리가 사용하는 스테인리스강은 대부분 18/8 스테인리스(또는 304 스테인리스)로 크롬, 니켈, 규소, 탄소, 질소, 망간 등이 들어간 철 기반의 합금이며, 내식성이 강하고 재활용하기 용이합니다.
▲ 스탠리 텀블러에서 납 성분 검출
미국에서 하늘을 치솟는 스탠리의 인기 때문인지 2024년 초 X-ray와 CT기기를 제작하는 한 스타트업 Lumafield가 우연히 스탠리의 텀블러를 촬영하여 밑부분에서 납 성분을 검출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납 성분은 진공 처리를 완료하고 병 밑면을 납땜(lead soldering)할 때 들어간 것으로, 스탠리사는 해당 부위는 안쪽으로 스테인리스 강과 박막 코팅이, 바깥쪽으로 밑바닥 덮개로 덮여 있어 소비자나 텀블러의 내용물과 직접 접촉하지 않아 안전하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보온병 마감작업에서 납땜은 많은 제조사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주요 기술 잡지사 Wired에 따르면 스탠리 외에도 유명 브랜드 중에는 MiiR, Yeti, 휴대용 정수 텀블러로 유명한 LifeStraw 등의 상품에서도 납땜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납은 독성물질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허용 안전기준치를 자체적으로 철회할 만큼 위험하며, 그래서 경각심을 갖고 사용해야 합니다. 납이 인체에 유입되면 혈액에 녹아들고 신체 내 여러 조직에서 축적되고 납중독(lead poisoning)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납은 또 녹는점이 낮아 납땜이 결합부위에 잘 흡수되어 뛰어난 내구성을 발휘하기에 사실 회로가 들어간 전자제품 등에 흔하게 사용됩니다. 일상에서 소비자한테 노출되는 납은 워낙 적어 중독의 위험성은 낮으며, 납땜작업 하는 사람들 또한 보호기구를 착용하면 어느 정도 보호되어 괜찮다고 합니다.
▲ 리브랜딩과 윤리적 소비
스탠리는 타겟층을 잘파세대로 바꾸면서 유명 인플루언서와 연예인을 앞장 세웠고, 소지품으로 자아를 표현하는 젊은 층을 겨냥해 흔치 않은 색상과 시즌 한정판 디자인을 출시하고 텀블러 꾸미기를 유행시키며 성공적인 리브랜딩 사례가 되었습니다.
잘파세대는 개성을 표출하는 것만큼이나,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erism)에 높은 가치를 두는데 이 또한 스탠리의 자연친화적 슬로건인 "Build for life"와 들어맞았습니다. 틱톡의 전소된 차량 속에서도 음료를 지킨 스탠리 텀블러는 영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요즘 사람들한테 설득력 높은 성능 보증이 되어줬고, 스탠리 텀블러 하나를 사면 유행도 챙기며 환경까지 고려한다는 인상을 주게 됐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스탠리의 유행이 오히려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일회용 페트병이나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컵보다 다회용 개인 텀블러가 자연에 좋다는 이유로 텀블러는 과잉 생산되고 있으며, 스탠리 텀블러의 유행은 이러한 과생산에 불을 붙였습니다.
텀블러 한 개를 고를 때도, 성능과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윤리적 가치를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단순한 트렌드나 희소성에 휘둘리기보다는, 진정 필요한 선택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지속가능한 소비를 실천해 봅시다. 우리의 일상 속 작은 물건 하나가 환경과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기억하고,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참고자료
Giordano, M. (2024). Is there lead in your reusable water bottle. Wired. https://www.wired.com/story/stanley-cup-lead-soldering/
Soulen, R. (1996). James Dewar, His Flask and Other Achievements. Physics Today, 49(3): 32-37. https://doi.org/10.1063/1.881490
Q. 보온병 텀블러는 어떻게 내용물의 온도를 유지하는가?
A. 보온병 텀블러는 안에는 유리 또는 금속 소재의 이중구조가 있으며 그 사이가 초진공상태라 전도와 대류로 인한 열손실이 적습니다. 또한 보온병 내부는 금속으로 박막 코팅되어 있어 적외선 파장의 전자기파를 반사하여 복사로 인한 열손실을 최소화합니다.
Q. 스탠리 텀블러의 선풍적인 인기 비결은?
A. 스탠리 텀블러는 타깃 연령층을 바꾸는 리브랜딩으로, 유명 인플루언서와 연예인을 내세워 큰 인기를 누리게 됐습니다. 또한 틱톡에서 큰 화제를 이끌었는데, 화재에서 버티는 성능을 자랑했으며 사람들이 앞다퉈 구매 후기 영상을 올리며 군중심리를 자극했습니다. 이밖에 스탠리는 자연친화적인 슬로건으로 사람들의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요즘의 소비자들을 자극했습니다.
연관 전공 | 물리학과, 화학과, 과학교육과(물리교육, 화학교육), 과학학과(과학사, 과학철학), 재료공학과, 소비자학과 |
관련 교과 |
「통합과학2」 1. 변화와 다양성, 2. 환경과 에너지 「과학탐구실험2」 1. 생활 속의 과학 탐구 「물리학」 1. 힘과 에너지 「역학과 에너지」 2. 열과 에너지 「물질과 에너지」 3. 화학 변화의 자발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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