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이야기/실생활 속 과학

빵 속 글루텐 단백질, 면역학으로 보는 글루텐프리와 살 찌는 이유

해리체리T 2025. 1. 22. 18:59

 

[제빵의 과학] 뉴욕의 베이글부터 파리의 크루아상까지, 서구권 대도시는 저마다 그곳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깃든 상징적인 빵을 갖고 있는데요. 베이글이 쫄깃하고, 크루아상이 바삭한 비밀 - 그 속엔 밀가루의 단백질인 글루텐이 있단 걸 알고 계셨나요? 글루텐이 빵에 주는 영향부터, 지금 유행하는 '글루텐 프리'에 대한 진실까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일상생활 속 주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자신의 진로희망에 맞춰 과학탐구/과학실험 주제를 만들어 심화학습, 생기부 세특, 수행평가, 동아리, 진로활동, IB 물리·화학·생물 IA나 EE 등에 활용해 보세요 :)

목차

    글루텐의 과학, 베이글의 과학, 베이글이 쫄깃한 이유, 크루와상의 과학, 크루아상, 크로와상 결, 글루텐 프리

    1. 글루텐의 정의

    글루텐(gluten)은 밀, 보리, 호밀 등의 곡물¹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단백질로, 음식을 단단하게 결합시켜 형태를 줍니다. 글루텐을 함유하고 있는 곡물의 대부분은 우리나라 밥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곡물이라, 우리나라에서 글루텐을 접하고 또 유독 경계하는 창구는 밀가루인 거 같습니다.

    ¹이외에 글루텐이 든 곡물에는 △ 밀알, △ 시중 파스타에 사용되는 듀럼밀(durum)이나 세몰리나(semolina), △ 통밀 크래커를 만드는 그레이엄(graham), △ ‘고대곡물’로 영양적 가치가 각광받아 건강능식품으로 인식되는 스펠트(spelt), 에머밀(emmer), 파로(farro), 호라산밀(Khorasan), 아인콘(einkorn) 등이 있습니다.

     

    밀가루는 일반적으로 75%의 탄수화물(전분² 포함), 7~15%의 단백질, 14~15%의 수분 등으로 구성됩니다. 단백질은 다시 용해도에 따라 수용성의 알부민(albumin)과 불용성의 글로부린(globulin), 글리아딘(gliadin), 그리고 글루테닌(glutenin)으로 분류되는데, 이중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은 밀가루가 물과 섞였을 때 함께 글루텐 단백질을 이루기 때문에 묶어서 '글루텐 단백질'이라 부릅니다. 이 '글루텐 단백질'은 밀의 배유(endosperm) 안에서 찾을 수 있으며, 밀가루 속 단백질의 약 80% 정도를 차지합니다.

    ²빵 속 글루텐과 전분은 비유하자면 건축물의 철근과 콘크리트 같은 관계인데, 오븐 속 반죽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글루텐이 견고한 골격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전분이 글루텐으로부터 물을 흡수하며 호화시킵니다. 

    곡물 밀 해부도 단면도, 식물 해부학, 배, 배유, 배젖, 겨, 밀겨, 밀기울, 기울, 밀알, 글루텐
    밀 해부도 (출처: American Chemical Society ❘ Sciencely 재구성)

     

    글루텐은 이스트나 화학적 팽창제(chemical leaveners)³에 의해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가둬 기공(공기주머니들)을 형성하여 가벼운 반죽을 만들 수 있게 합니다. 밀가루의 단백질 함량은 빵의 부피와 선형 상관관계를 가지며 밀가루의 종류별 용도를 결정합니다.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은 각각 글루텐 함량이 12-14%, 10-12%, 그리고 8-10%로 글루텐 함량이 높은 강력분은 일반적인 빵을 만들 때 쓰이며, 글루텐 함량이 낮은 박력분은 바삭한 쿠키나 포슬한 케이크 시트를 구울 때 사용됩니다. 밀가루의 단백질 함량은 제분 원료에 따라, 유전적으로 경질밀(굳은밀)이 연질밀(무른밀)보다 단백질이 많고, 재배시기에 따라 늦가을에 수확하는 봄밀이 여름에 수확하는 겨울밀보다 단백질이 많습니다.

    ³예) 베이킹 소다나 베이킹 파우더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밀가루 글루텐 함량, 밀가루 차이, 밀가루 용도, 식감
    글루텐 함량에 따른 밀가루 분류

     

    2. 글루텐 형성과정 속 과학

    밀가루의 수화를 통한 글루텐 형성

    글루텐은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란 2개의 단백질이 결합하여 형성됩니다. 단백질은 수십 개의 아미노산들이 긴 사슬로 연결된 형태인데, 단백질마다 독특한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으로 고유의 3차원적 구조를 가집니다. 글리아딘 단백질은 둥근 구슬들을 꿰놓은 목걸이와 같은 형태이며, 글루테닌 단백질은 늘어진 막대 같은 형태를 띱니다. 이러한 형태 덕분에 글리아딘은 높은 점성(viscosity)을 가져 빵의 부피를 담당하고, 글루테닌은 높은 탄성(elasticity)을 가져 빵의 반죽시간과 반죽 형성을 결정합니다.

    글리아딘, 글루테닌, 글루텐 단백질, 아미노산 사슬, 단백질 접힘, 단백질 구조, 밀가루, 제빵
    글루텐 단백질을 구성하는 글리아딘과 글루테닌 단백질

     

    글루텐의 형성은 밀가루가 물과 섞이면서 시작되는데, 물에 의해 글루텐을 구성하는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에서 단백질 풀림(protein unfolding)⁴이 일어납니다. 이때 단백질 분자의 아미노산들이 바깥으로 노출되면서 크게 3종의 결합이 발생하는데:

    단백질 풀림단백질이 원래 성질을 잃고 선형으로 변성될 때를 의미하며 pH 변화물리적인 요인화학적인 요인효소의 작용 등에 의해 발생

    1. 글루테닌과 글리아딘 속 소수성 성질의 글루타민(glutamine) 아미노산이 노출되고, 글루타민의 곁사슬로 붙어 있는 -CONH 아마이드(amide)끼리 수소결합
    2. 글루테닌 사슬 속 시스테인(cysteine) 아미노산이 노출되고, 시스테인의 -SH그룹(thiol/sulfhydryl 그룹)이 산화되어 두 개의 시스테인 사이에 -SS- 이황화결합(disulfide bonds), 일명 'Disulfide bridge(이황화 브리지, 다리결합)'를 만들어 시스틴(cystine)을 형성
    3. 위 두 가지 결합보다 반죽에 영향력은 적으나, 글루테닌과 글리아딘의 티로신(tyrosine) 아미노산끼리도 교차결합(crosslinks, 두 개 이상의 분자가 공유결합)

    글루텐 형성, 글루테닌, 글리아딘, 단백질 풀림, 아미노산 결합, 분자 간 상호작용, 글루타민, 아마이드 곁사슬, 수소결합, 시스테인, 시스틴, 산화, 이황화결합, 티로신, 교차결합, 공유결합
    글루텐 형성의 3종 결합: 수소결합, 이황화결합, 교차결합

     

    반죽을 치대는 행위는 글루텐의 단백질 풀림을 지속시켜 아미노산 분자 간의 상호작용(intermolecular interactions)을 유발합니다. 수소결합은 증가하여 반죽에 점성이 생기는 반면, 이황화다리는 끊어지고 재형성을 반복하며 반죽에 탄성을 줍니다. 구체적으론 반죽이 신축(stretch + relax)되며 늘려지면 이황화결합이 끊기고 줄어들면 다시 인접한 단백질 분자 간에 이황화결합이 결성되는데, 반죽을 계속 치대다 보면 언젠가 더 이상의 끊김과 재형성이 일어나지 않고 반죽이 탄탄해져 신축을 저항합니다.

    시스테인 산화 시스틴 형성, 단백질, 아미노산, 이황화결합, 이황화 브리지, disulfide bridge, disulfide bond, oxidation

    이쯤이면 글루테닌 고분자와 글루텐 조직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밀가루 반죽은 점탄성 있는(viscoelastic) 그물 구조(망상 구조)를 완성합니다. (물론 만드는 빵이 요구되는 반죽의 경도에 따라 시간을 조율해야 하며, 일반적으로 -SS-결합과 -SH기의 비율이 15일 때가 이상적이라 합니다.)

     

    반죽의 글루텐 단백질에서 이러한 복잡한 결합들이 생겨나는 동시에, 빵을 부풀리기 위해 넣은 이스트(팽창제)는 밀가루 속 아밀라아제(amylase) 효소에 의해 가수분해된 전분 입자(starch granules) 속 당을 발효시키며 이산화탄소를 생성합니다. 이 발효는 구체적으로 에탄올발효(ethanol fermentation) 또는 알코올발효(alcoholic fermentation)라 불리는데, 일반적으로 포도당(glucose), 과당(fructose), 설탕(sucrose) 같은 당류를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는 대사과정입니다. 실제론 수많은 화학반응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긴 과정이나, 알코올발효의 전체적인 화학반응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포도당, 에탄올 발효, 알코올 발효, 발효, 에탄올, 이산화탄소, 화학반응식

    여기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가스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물 구조에 붙잡혀 반죽을 부풀립니다. 잘 치댄 반죽일수록⁵ 반죽의 신장성이 좋아 가스 보유력이 높고, 완성된 빵에 기공이 예쁘게 잡힌다고 합니다. 반면 에탄올은 대부분 굽는 과정에서 날아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빵이 완성되면 2% 미만의 에탄올만 남는다고 합니다.

    ⁵요즘 유행하는 '무반죽빵'은 빵을 손반죽 또는 기계반죽 하지 않고, 긴 시간에 걸쳐 빵이 발효되는 중에 '폴딩'하고 가볍게 주물러 글루텐을 형성시킵니다.

    글루텐 형성, 기공, 빵 단면
    글루텐 형성이 잘 되어 기공이 예쁘게 잡힌 빵 (출처: artisanbakerm)

     

    반죽의 글루텐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변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베이킹이 어려운 이유'로 유명한 짤인데, 보시는 거처럼 베이킹은 재료에 따라 반죽이 민감하게 반응하여 결과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반죽 속 글루텐 형성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변인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베이킹이 어려운 이유, 제빵이 어려운 이유, 제과가 어려운 이유, 홈베이킹이 어려운 이유 짤, 밈

     

    먼저 밀이 아닌 다른 곡물로 만든 가루는 밀보다 글루텐 함유량이 낮아 글루텐 형성이 적게 발생하여 이산화가스를 잘 가두지 못하고 반죽의 밀도가 높습니다. 또한 통밀가루의 경우,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밀의 속껍질인 겨가 남아 있는데 겨가 물리적으로 글루텐 단백질 사이를 가로막아 글루텐 형성을 막습니다. 그러나 통밀빵이 흰 빵 보다 건강한 건 글루텐이 적게 형성돼서가 아니라, 덜 정제되었기에 식이섬유로 인한 체내흡수가 느려 혈당을 서서히 올리고 비타민이나 무기질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밀가루를 쌀가루로 대체하여 만든 '100% 쌀 빵'은 사실 쌀가루가 100%이지, 그 제빵용 강력쌀가루 안에는 쌀 이외에 밀 등에서 추출한 글루텐이 첨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⁶

    ⁶집에서 떡이나 새알을 만들어봤다면, 떡 반죽은 치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빻는 경우가 있긴 한데, 이는 쌀가루 전분의 호화시키기 위해서이며 나중에 별도의 글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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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과 버터가 바꾸는 글루텐 형성

     

    소금: 반죽의 글루텐 단백질이 소금을 만나면 그물구조가 단단해져 점성이 증가하고 가스보유력이 높아집니다. 소금은 반죽 속 수분에 의해 용해되는데, 소금의 나트륨 양이온(Na+)과 염소 음이온(Cl-)이 각각 글루테닌에서 전하를 띤 일부 아미노산에 붙어 중화시킵니다. 이로 인해 글루테닌 막대들은 서로 반발하지 않고 더 가까이 올 수 있게 되어, 반죽을 치대면 더욱 촘촘한 그물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즉, 소금은 밀가루 속 글루텐 단백질을 응고시키는데, 글루텐 조직에 탄력이 생겨 반죽이 쉽게 처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소금은 제빵 외에도 쫄깃함이 '생명'인 수제비 반죽이나 면발을 만들 때 넣기도 합니다. 

     

    알코올(알콜): 베이킹할 때 향로로써 럼, 버본, 와인, 보드카 등의 술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콜 양을 늘리 수록 반죽에 넣는 물의 양이 줄어드는데,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 알코올에서는 불용성이라 물에 녹지 않던 글리아딘이 용해됩니다. 이로 인해 단백질 풀림이 덜 발생하고 단백질 분자 간의 상호작용이 적어져, 글루텐 형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얇고 짤막한 글루텐 시트(sheets)들이 만들어집니다. 즉, 알코올은 밀가루 속 글루텐 형성을 억제하여, 반죽이 부드럽고 잘 늘어나지만 쉽게 부서집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알코올은 제빵 할 때도 특히 밀대로 밀어 펼쳐 만들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부스러지는 파이나 타르트 반죽에 많이 사용됩니다. 

     

    버터: 버터는 빵에 풍미뿐만 아니라 식감까지 많은 영향을 줍니다. 상온에서 고체인 버터는 반죽을 치대는 과정에서 생긴 글루텐 층상 속에 퍼져 글루텐을 드문드문 끊어버리고 물리적으로 단백질 분자끼리 인접하는 걸 방해합니다. 이로 인해 반죽을 치대더라도 단백질끼리 맞닿지 못하여 결합들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니다. 반죽을 너무 많이 치대어 버터가 녹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버터는 밀가루 속 글루텐 형성을 억제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반죽은 탄성이 적어 잘 부서집니다. 이 특성 때문에 버터는 구웠을 때 바삭한 식감을 내는 스콘이나 제과류(비스킷, 쿠키)에 많이 사용됩니다.

     

    Q. 그래서 베이글이 유독 쫄깃하고, 크루아상이 유독 바삭한 이유는?

    A. 답변을 위해서는 간략히 두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레시피를 알아야 하는데, 베이글의 경우 글루텐 함량이 높은 강력분을 쓰며 오븐에 굽기 전 반죽을 물에 데치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죽은 데쳐지면서 표면의 전분이 '젤라틴화(gelatinize)'되어 코팅되고, 오븐에서 구울 때 이 코팅 때문에 글루텐 망상구조 속 가스가 많이 팽창하지 못하여 밀도 높고 쫀득한 베이글이 만들어집니다. 크루아상의 경우 반죽을 덜 치대며, 반복적으로 얇게 밀어 사이에 층층이 버터를 넣고 압착하여 만듭니다. 덜 치댔기 때문에 글루텐이 느슨하여 잘 늘어나고, 얇게 민 반죽 사이사이에 쌓은 버터가 글루텐 단백질끼리 인접하는 걸 막아 글루텐 형성을 방해합니다. 이 때문에 구워진 크루아상의 단면은 얇은 빵 층이 겹겹이 쌓여 있어 바삭한 식감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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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글루텐 자가면역 질환과 ‘글루텐 프리’의 진실

    ‘글루텐 프리’ 식단이 모든 사람한테 슬기로운 선택지가 아닙니다. 글루텐을 소화 못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극히 일부이며, 많은 인간대상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글루텐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글루텐을 섭취하는 것이 더 건강에 이롭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사람들이 글루텐을 기피하는 이유

    언제부턴가 ‘글루텐 프리’는 지하철 델리만쥬 가게에서조차 사용하는 마케팅 전략이 됐습니다. 밀가루 음식은 몸에 안 좋다는 부정적인 언론과 대중인식 때문인지 밀가루 속 글루텐까지 덩달아 낙인이 찍혔습니다. 

     

    2024년 시장조사 기업 '민텔(Mintel)'에서 진행한 소비자 설문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글루텐 프리' 식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① '특별한 이유 없음', ② '더 건강해서', ③ '소화에 도움이 돼서'였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퇴임교수는 '글루텐 프리' 식단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 '글루텐 프리' 식단을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정했습니다: ▲ 직감: 그냥 좋아 보여서, ▲ 경험: 글루텐 식품 섭취 후 속이 불편, ▲ 논리: 셀리악병 환자한테 글루텐이 위험하다고 하니 어쩌면 나한테도 안 좋을 거 같아서, ▲ 유명인 보증/홍보(celebrity endorsement), ▲ 개인 일화: 주변 사람이 글루텐을 끊었더니 건강해졌다는 얘기를 들어서, ▲ 마케팅: 글루텐 프리 식품 업체의 홍보에 이끌려.

     

    그러나 앞서 알아본 거처럼 글루텐은 결코 합성첨가물이나 유해성분이 아닌 곡물 속 단백질입니다.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이란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무려 약 65%의 세계 인구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선천적인 이유 또는 후천적인 퇴화로 인해 우유 속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인 락타아제(lactase)가 부족하여 우유를 마시면 소화불량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마트의 유제품 코너에 가면, 이런 사람들을 위해 소화가 잘되는 '락토 프리' 우유가 하나의 옵션 - 선택지로서 존재합니다. 

     

    '글루텐 프리' 식품도 글루텐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옵션일 뿐, 대부분 사람이 유당불내증이 심각하지 않으면 일반우유를 사 마시는 거처럼 소화 어려움이 없다면 글루텐 또한 일부러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 글루텐을 소화 못하는 셀리악병

    적게는 0.5%에서 많게는 6%까지의 세계인구가 글루텐 불내증(gluten intolerance)이 있습니다. 그중에 일부는 자가면역 질환인 셀리악병(Celiac disease) 환자인데, 글루텐을 섭취했을 때 면역체계(immune system)가 글리아딘을 병원체(pathogen)로 인식하여 면역반응(immune response)을 일으킵니다. 셀리악병의 증상으론 피로감, 복부팽만감, 반복적인 변비와 설사부터 심각하게는 체중감소, 영양실조, 장 내벽 손상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셀리악병을 진단하는 혈액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지만 평소 글루텐 섭취 시 소화불량을 경험하는 사람으로, (좁은 의미의) 글루텐 불내증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non-celiac gluten sensitivity, NCGS)'과 '글루텐과민성장질환(gluten sensitive enteropathy, GSE)'이나 밀 알레르기가 원인인 경우입니다.

     

    짧게 셀리악병 환자가 글루텐을 섭취했을 때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면역학적 관점에서 이해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의 항원(antigen)과 대항하기 위해 항체(antibody)라는 단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 항체는 항원을 식별하는 부위인 항원결정기(epitope)에서 항원과 특이적으로 결합하여 면역반응을 일으키고,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lymphoctype)를 활성화시켜 항체 생산을 늘리고 T세포를 통해 감염과 싸우도록 합니다. 항원결정기는 보통 8~11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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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원항체반응

     

    정상적인 소화 과정에서는 소장의 단백질 분해 효소인 프로테아제(protease)가 단백질을 흡수하기 좋은 작은 단위의 아미노산으로 분해하고, 이런 식으로 작게 분해된 아미노산은 림프구가 인체에 해롭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글루텐 속 글리아딘에는 프로테아제가 분해하지 못하는 2가지 아미노산인 프롤린(proline)글루타민(glutamine)이 있어 쪼개지지 않고 다소 큰 펩타이드 형태로 소장 점막에 닿습니다. 글루텐 불내증을 앓고 있지 않은 경우, 소화되지 못한 글리아딘은 이후 대변으로 배출됩니다. 그러나 셀리악병 환자의 경우, 이 분해되지 않은 글리아딘은 항원결정기를 통해 위험이 인식되고 면역반응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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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리악병의 작용기전 (출처: Scientific American ❘ Sciencely 재구성)

     

    이때 사이토카인(cytokine)이란 단백질은 면역체계에 신호 전달 역할을 수행하며 여러 면역 세포와 기타 세포의 분비를 늘리는데, 세포들을 이곳으로 운반하기 위해 혈액의 흐름을 늘리면서 염증(inflammation)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소장 융모가 손상됩니다. 보통이라면 이 염증은 침입물의 제거가 완료되면 금방 가라앉지만, 글루텐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현대인의 식단으로 인해 글루텐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염증이 가라앉지 못하고 복부 통증, 설사, 심하게는 영양실조를 초래합니다.

    셀리악병 손상 융모 소장벽 글루텐 염증반응 영양실조
    셀리악병에 의한 면역반응으로 손상된 소장융모 (출처: Beyond Celiac ❘ Sciencely 재구성)

     

    그러나 이런 건강상의 문제는 밀가루나 글루텐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사람들에 국한되며, 글루텐 불내증을 앓고 있지 않다면 '글루텐 프리' 식품은 모두에게 맞는 건강식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또 글루텐에 대한 심각한 과민반응이 없다면 글루텐을 함유하고 있는 다양한 곡물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주장합니다. 2017년 하버드 대학에서 셀리악병을 앓고 있지 않은 성인 100,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장기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글루텐 섭취를 억제한 집단의 심장질환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Lebwohl et al, 2017). 이외 다수의 연구에서는 매일 2-3끼 통곡물 식단을 섭취한 집단과 2끼 미만을 그렇게 섭취한 집단을 비교하였는데, 글루텐 섭취를 억제하지 않고 매일 2-3끼를 먹은 집단의 심장질환, 뇌졸중, 2형 당뇨병 등의 발병률이 현저히 낮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는 아마 글루텐을 함유하고 있는 곡물 속 풍부한 영양소 덕분인데, 예를 들어 프리바이오틱스(prebiotics)인 아라비녹자일란 올리고당(arabinoxylan oligosaccharide)이 있어 위장관 안에 있는 유익균인 비피도박테리아(bifidobacteria)의 대사 및 성장, 활성을 도와 장운동과 배변 활동을 원활하게 해 줍니다.

     

    4. 글루텐의 다이어트 효과혈당과의 연관성

    과학적이고 현명한 다이어트, 무작정 굶지 않고 건강히 챙겨 먹는 식이요법이 각광을 받으면서 ‘글루텐 프리’가 또 하나의 다이어트 기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버드 보건대학에선 이는 어쩌면 '글루텐 프리' 식단을 선택했을 때 '다이어트의 적'이라 지목되는 맛있는 빵, 파스타, 시리얼, 가공 간식(예: 과자)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라 분석합니다. 이런 음식들은 초가공식품으로 영양가가 낮으며 칼로리는 높은데, '글루텐 프리' 식단 덕분에 섭취를 줄이거나 중단했기 때문에 체중감량이 발생했을 겁니다. 물론 이밖에 '글루텐 프리' 식단을 위해 채소나 과일 그리고 건강한 '글루텐 프리' 탄수화물인 퀴노아, 현미, 기장쌀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여 체중감량이 발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글루텐 불내증이 없는 사람이 '글루텐 프리' 식단을 고수할 영양학적 이유나 체중감량 효과성이 연구로서 입증된 바가 없거나 턱없이 부족합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일부 연구에서는 약한 증상의 셀리악병 환자가 식단을 '글루텐 프리'로 전환했을 때 비만율과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⁷이 증가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며 장 흡수도(intestinal absorption)가 증가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가공된 '글루텐 프리' 식품이 높은 GI지수(혈당지수)와 많은 정제당과 포화지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해석됩니다.

    ⁷대사증후군: 혈압상승, 고혈당, 혈중지질이상, 비만(특히, 복부비만) 등 심뇌혈관질환 및 당뇨병의 위험을 높이는 위험인자가 겹쳐 있는 상태 [질병관리청]


    식사 후 속이 불편한 원인으로 오인되는 글루텐 불내증은 사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보다도 드문 질환이고, '글루텐 프리' 식단이 건강호전이나 체중감량과 직결되지 않는다고 하니 빵순이로서 빵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켜 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인 정보들 속에 진실이 묻혀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더욱 건강하고 균형 잡힌 선택을 해보도록 합시다.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오해는 가볍게 덜어내고, 삶의 더 깊은 맛을 즐겨보세요!

     

     

    참고자료

    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Gluten: A Benefit or Harm to the Body? The Nutrition Source. https://nutritionsource.hsph.harvard.edu/gluten/

     

    Hill, M. (2012). Attack of the Gluten. American Chemical Society. https://www.acs.org/education/chemmatters/past-issues/archive-2011-2012/gluten.html 

     

    Lebwohl, B., Cao, Y., Zong, G., Hu, F.B., Green, P.H.R., Neugut, A., Rimm, E.B., Sampson, L., Dougherty, L., Giovannucci, E., Willett W.C., Sun, Q., Chan, A.T. (2017). Long term gluten consumption in adults without celiac disease and risk of cononary heart disease: prospective cohort study. BMJ, 2017: 357. https://doi.org/10.1136/bmj.j1892

     

    Shmerling, R. (2022). Ditch the gluten, improve your health? Harvard Health Publishing. https://www.health.harvard.edu/staying-healthy/ditch-the-gluten-improve-your-health#:~:text=Gluten%20is%20a%20protein%20found,is%20triggered%20by%20eating%20gluten.

     

    이상희 (2015). 쫄깃쫄깃한 면발의 비밀동아사이언스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726


    Q. 왜 어떤 빵을 쫄깃하고, 어떤 빵은 바삭할까?
    A.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 속 글루텐 단백질이 쫄깃한 반죽을 만듭니다. 그러나 빵을 만들 때 버터 등의 쇼트닝 재료를 첨가하면 이들이 글루텐 단백질 분자 사이를 가로막아 글루텐 형성을 방해하여 바삭한 빵이 만들어집니다. 

    Q. 글루텐을 안 먹으면 건강해지고 살이 빠지나요?
    A. 글루텐은 곡물의 단백질로 유해식품이 아니며, 글루텐 불내증을 앓고 있지 않은 경우 '글루텐 프리' 식단은 모두에게 적합한 건강요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글루텐이 든 곡물을 다양하게 섭취하는 게 건강에 이로울 수 있으며, 가공된 '글루텐 프리' 식품의 섭취는 건강과 다이어트(체중감량) 모두에 역효과를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연관 전공 식품영양학과, 의학과, 보건학과, 과학교육과, 화학과, 생명과학과(면역학), 생명공학과
    관련 교과
    「통합과학1」 2. 물질과 규칙성, 3. 시스템과 상호작용
    「통합과학2」 1. 변화와 다양성
    「과학탐구실험2」 1. 생활 속의 과학 탐구

    「화학」 3. 화학 평형
    「화학 반응의 세계」 2. 산화·환원 반응, 3. 탄소 화합물과 반응
    「생명과학」 1. 생명 시스템의 구성, 2. 항상성과 몸의 조절
    「세포와 물질대사」 2. 물질대사와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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