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보나라의 과학] 이탈리안 리조또나 까르보나라는 모두 크림 없이 크리미한 소스를 만듭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평소 궁금하거나 관심있던 일상 속 현상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의 진로희망에 맞춰 과학탐구/실험 주제를 만들어 심화학습, 생기부 세특, 수행평가, 동아리, 진로활동 등에 활용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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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 「흑백요리사」란 방송 프로그램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는데, 셰프님들의 화려한 요리 솜씨와 긴장감 있는 대결 구도로 매 에피소드마다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특히 우승자인 나폴리 맛피아님이 현란한 기술로 거대한 웍 안에 든 리조또를 섞는 모습은 「흑백요리사」 전편을 아울러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손에 꼽힙니다.
자막 속 이탈리아어 ‘만테까레(mantecare)’라는 조리법의 또 다른 이름은 ‘에멀젼(emulsion)’이며 파스타나 리조또의 소스, 샐러드드레싱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됩니다. 그리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에멀젼’이란 조리법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을 취해 맛있는 까르보나라 한 접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봅시다.
화학에서의 '에멀젼'과 유화제의 역할
에멀젼(emulsion) 또는 유화(유화액)는 서로 잘 섞이지 않는 두 액체 중 하나가 작은 미립자를 이루어 다른 액체에 분산된 상태 – 즉, 콜로이드(colloid) 상태에 이른 용액을 의미합니다.
에멀젼은 잘 섞이지 않는 두 액체를 흔들거나 젓는 등 에너지를 가해야 발생하는데,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분리되어 원래의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성향을 지닙니다.
에멀젼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계면활성제의 일종인 유화제를 사용하는데, 계면활성제는 기체-액체, 액체-액체, 또는 액체-고체가 맞닿는 경계면에서 계면의 표면장력을 약화하여 경계를 완화시킵니다.
서로 잘 섞이지 않는 두 액체 – 예로 물과 기름 – 사이에서 계면활성제는 기름방울과 물의 경계를 풀어주어 기름과 물이 섞이도록 해줍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면활성제의 화학적 구조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계면활성제의 화학적 구조 계면활성제 분자는 올챙이와 같은 모습으로, 물을 끌어당기는 친수성(hydrophilic) 머리 부분과 기름을 끌어당기는 소수성(hydrophobic) 꼬리 부분으로 구성 ![]() |
이렇게 친수성과 소수성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을 양친매성(amphiphilic)이라 부르며,
계면활성제의 소수성 끝이 잘게 쪼개진 기름을 둘러싸고 친수성 끝이 주변의 물과 맞닿아 기름방울이 물에 분산되도록 도와줍니다.
정리하면 계면활성제와 유화제의 차이는: 계면활성제는 계면의 경계를 완화시켜 에멀젼을 유도하고 유지합니다. 유화제는 계면활성제의 일종입니다.
까르보나라의 유화제, 노른자 속 레시틴
우리는 일상에서 손쉽게 에멀젼의 예시를 찾아볼 수 있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까르보나라 외에도 마요네즈, 커피, 로션, 잉크, 심지어 슬라임 액체괴물까지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까르보나라의 소스가 왜 에멀젼의 예시인지는 그 조리 과정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SNS에서 크림이 들어간 까르보나라는 진짜가 아니라는 논란을 한 번쯤 접해봤을 겁니다. 그렇다면 크림 없이 어떻게 까르보나라 특유의 크리미한 소스를 만드는 걸까요?
‘정통 까르보나라’ 레시피에서는 관찰레(베이컨)에서 나온 돼지기름에 면과 면을 삶을 때 나온 면수를 넣고 볶다가 마지막에 날계란 노른자를 섞어 부드럽고 크리미한 소스를 만듭니다.
여기서 노른자가 유화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노른자 속 레시틴(lecithin)이란 성분은 양친매성 성질을 갖기 때문에 친수성 끝이 면수, 소수성 끝이 돼지기름과 붙어 짙은 농도의 소스를 형성합니다. 구체적으로 레시틴은 동식물 조직 내 황갈색의 지방 물질군을 일컫는 표현이고, 레시틴은 사실 여러 양친매성의 글리세로인지질(glycerophospholipids)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지질과 글리세로인지질의 화학적 구조 인지질(phospholipids)은 생체 내 대표적 계면활성제로 친수성의 인산기(PO₄³⁻) 머리 부분과 소수성의 지방산 꼬리 부분으로 구성 ![]() 글리세로인지질(glycerophospholipids)은 생체 내 가장 흔한 인지질의 일종으로, 글리세롤(C₃H₈O₃)을 뼈대로 인산기 머리 부분과 두 개의 지방산 꼬리가 결합 |
난황 레시틴은 여러 글리세로인지질 중에서도 특히 포스파티딜콜린(phosphatidylcholine, PC)이 높은 비율로 발견되는데, 아래 그림을 통해 간단히 면수와 붙는 친수성 부분과 돼지기름에 붙는 소수성 부분이 어딘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담으로 레시틴은 다양한 영양(보조)제로도 시중에 판매되는데, 물과 기름이 섞이도록 하는 특성으로 혈관벽에 지방이 쌓이는 동맥경화증을 예방한다고 합니다.
리조또의 유화제 없는 에멀젼
다시 「흑백요리사」 짤을 보면, 자막에서 에멀젼(만테카레)를 통해 소스의 농도를 높여 면이나 쌀에 소스가 잘 달라붙게 한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리조또의 레시피를 보면 까르보나라처럼 유화제의 역할을 하는 노른자 같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리조또 소스는 어떻게 분리되지 않고 쌀과 고르게 섞일 수 있는 걸까요?
유화제는 분산을 촉진시키고 에멀젼의 역학적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지, 유화제가 없더라도 다른 이유로 에멀젼이 발생하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파스타나 리조또를 만들 때 맹물이 아닌 면수를 넣는 이유도 바로 이 부분에 있습니다.
면의 전분이 풀려 있는 면수는 끈적끈적한 성질인 점성(viscosity)이 높습니다.
점성(도) 유체의 저항으로, 예로 식용유 < 주방세제 < 꿀 순으로 저항하는 정도가 높아 점성이 높음 ![]() |
이러한 면수를 치즈와 같이 소스에 섞으면, 열에 의해 치즈가 녹아 점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소스의 점성이 높아집니다.
격렬한 웍질을 통해 리조또 소스를 섞으면서 소스 속 버터나 올리브유의 기름방울이 잘게 쪼개져 에멀젼이 발생하는데,
점성이 높은 리조또 소스가 기름방울끼리 다시 뭉쳐 분리되는 것을 저항하여 고르고 또 꾸덕한 소스 만들어집니다.
이밖에 점성 높은 리조또 소스는 증점제(thickening agent)의 역할뿐만 아니라, 소스가 잘 스며들지 않는 파스타 면이나 쌀에 소스가 잘 엉겨 붙도록 하는 결합제(binding agent)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우리 식탁에는 잘 섞인 안정화된 에멀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양식집에 가면 식전빵과 함께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가 작은 종지에 나옵니다.
가라앉은 발사믹에 찍어먹기 위해 가볍게 빵을 휘저으면 일시적으로 유화가 발생하고, 우리는 빵에 맛있는 발사믹과 올리브유를 골고루 묻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유화제나 증점제가 없기 때문에 금방 또 층이 분리되겠죠.
오늘은 까르보나라와 리조또를 통해 에멀젼, 그리고 에멀젼을 유지해 주는 유화제와 증점제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까르보나라는 노른자 속 레시틴이란 유기화합물로, 리조또는 면수와 치즈만으로 소스의 점성을 높여 각각 크리미한 소스를 만들어냅니다.
사실 이외에도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에멀젼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맛있는 식사를 하며 숨겨진 에멀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자료
- 기초과학연구원(2017). 콜로이드 없이는 못살아. 기초과학연구원 과학지식백과.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901/selectBoardArticle.do?nttId=15072&pageIndex=1&mno=sitemap_02&searchCnd=&searchWrd=
Q. 정통 까르보나라는 크림 없이 어떻게 크리미한 소스를 만드는가?
A. 까르보나라를 만들 때 넣는 달걀노른자 속 레시틴(lecithin)이 관찰레 돼지기름과 면수 사이에서 기름방울을 둘러싸는 유화제(일종의 계면활성제) 역할을 하여 고르게 섞인 소스를 유지시켜 줍니다.
Q. 파스타를 만들 때 왜 면수를 넣을까?
A. 전분이 풀린 면수는 치즈와 함께 소스의 점성을 높이고, 이러한 점성 높은 소스는 기름방울끼리 뭉치는 걸 저항하여 고르고 부드러운 소스를 만들어냅니다.
연관 전공 | 식품영양학과, 식품공학과, 식품생명공학과, 약학과, 생명공학과 |
관련 교과 |
「통합과학1」 2. 물질과 규칙성, 3. 시스템과 상호작용 「화학」 2. 물질의 구조와 성질 「화학 반응의 세계」 3. 탄소 화합물과 반응 「생명과학」1. 생명 시스템의 구성 「세포와 물질대사」 1. 세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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